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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시인의 언어로 인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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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인생詩선》에는 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 시험을 위해 외우고, 쪼개고, 줄치고, 분석하던, 우리나라 대표 시인들의 명시 50여 편이 담겨 있다. 서정주 시인의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부터,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하종오 시인의 ‘동승’, 김종삼 시인의 ‘묵화’, 신동엽 시인의 ‘산에 언덕에’, 그리고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까지, 우리에게 낯익은 명시 50여 편을 저자는 새롭게 조명한다.

저자 : 손나라

저자 손나라는 문학 애호가였던 아버지에게서 어려서부터 시 쓰기를 배워 문학소녀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작가가 꿈이었으나, 우연히 교직에 발을 들여 놓아 1999년부터 현재까지 19년째 인문계 사립 남자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교사 경력 20년을 앞두고 때로는 아픈 기억으로, 때로는 은은한 감동으로 가슴 속에 머물러 있는 학생들에 대한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또한 남은 재직기간을 ‘교사’로 살 것인가, ‘직장인’으로 살 것인가, 고민하면서 직장인이 아닌 교사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으로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는 글을 쓰게 되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두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남을 이기고 올라가는 법을 강요하는 교육 현실에 대해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며, 자연과의 교감력을 상실한 채 꿈을 찾지 못하고 휴대폰과 컴퓨터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교사로서, 학부모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십대로서 잃었던 시의 언어와 감성을 회복하는 길이 진정한 행복의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언어가 병들면 시를 잃어버리고, 시를 잃어버리면 정신이 아프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글

제 1 장 당신을 만나고 싶은 날
첫 번째 만난 시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서정주
두 번째 만난 시 머슴 대길이 -고은
세 번째 만난 시 여우난골족 -백석
네 번째 만난 시 엄마 걱정 -기형도
다섯 번째 만난 시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유안진
여섯 번째 만난 시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일곱 번째 만난 시 별 헤는 밤 -윤동주

제 2 장 커피 향 그윽한 날
여덟 번째 만난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아홉 번째 만난 시 꽃 -김춘수
열 번째 만난 시 장수산1 -정지용
열한 번째 만난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열두 번째 만난 시 땅끝 -나희덕
열세 번째 만난 시 설일(雪日) -김남조
열네 번째 만난 시 상처적 체질 -류근

제 3 장 가슴 뛰는 날
열다섯 번째 만난 시 생의 감각 -김광섭
열여섯 번째 만난 시 소나기 -이면우
열일곱 번째 만난 시 어떤 기쁨 -고은
열여덟 번째 만난 시 참 좋은 말 -천양희
열아홉 번째 만난 시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스무 번째 만난 시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스물한 번째 만난 시 귀천(歸天) -천상병

제 4 장 눈물 흐르는 날
스물두 번째 만난 시 먼 후일 -김소월
스물세 번째 만난 시 사평역에서 -곽재구
스물네 번째 만난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스물다섯 번째 만난 시 묵화 -김종삼
스물여섯 번째 만난 시 동해바다 -신경림
스물일곱 번째 만난 시 산에 언덕에 -신동엽
스물여덟 번째 만난 시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제 5 장 문득 달리고 싶은 날
스물아홉 번째 만난 시 월훈(月暈) -박용래
서른 번째 만난 시 묘비명 -김광규
서른한 번째 만난 시 생명의 서(序) -유치환
서른두 번째 만난 시 동승 -하종오
서른세 번째 만난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서른네 번째 만난 시 숲 -정희성
서른다섯 번째 만난 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정지원
서른여섯 번째 만난 시 산문시1 -신동엽

마치는 글

현직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뽑은
우리나라 대표 시인들의 명시(名詩) 50여 편과 삶의 이야기
[윤동주, 백석, 한용운, 기형도, 천상병, 정호승, 신동엽, 안도현, 류근 …]

시를 통해 바라본 희로애락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생詩선》은 19년째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저자 손나라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명시(名詩)를 소개하면서, 자신과 타인의 인생살이에 대해 쓴 에세이이다.
저자는 시인의 감수성과 아름다운 언어에 감동한 바를 풀어놓음과 동시에, 고등학교 교사로 살아가는 이야기, 사춘기 아이를 둔 평범한 주부의 이야기, 국어교사로서 문학에 대한 이야기 등을 책에 담았다. 책 제목인 《인생詩선》은, ‘시의 언어로 인생을 바라본다’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저자는, 윤동주, 백석,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고은, 정지용, 황지우, 신동엽, 신경림, 기형도, 정호승, 안도현 시인 등 많은 독자들이 사랑하고 있고, 또 잘 알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시인들의 50여 편의 시를 골라 책에 재수록하면서 시에 대한 짧은 감상과 의미를 적었다. “때로는 한 편의 시가 소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힘겨운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아름다운 시를 쓴 시인들의 맑고 순수한 감성을 동경하며, 시인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겹쳐낸다.
지금껏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어린 시절 집안사람들의 이야기, 정신병을 앓다 일찍 죽은 오빠 이야기, 소통하지 못하는 중학생 아들과의 힘겨운 관계, 교사로서 학교에서 만나는 수많은 학생과 동료교사 이야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힘겹게 만드는 현실의 교육제도와 교사로서의 정체성 이야기 등,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웃고, 고민하고, 아파할 만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가 어느 누군가의 공감을 얻게 되길, 그래서, 혹시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로 다가가길 바라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도배된 거칠고 어그러진 말의 잔치 속에서 깊은 산골에서 솟아오르는 영롱한 시인의 목소리가 늘 그리웠다. 정제되고 순화된 고운 속살 같은 말들을 만나고 싶었다. 지금은 시(詩)가 필요한 시대이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말보다는 속 깊은 침묵이, 깊은 침묵 속에서 만들어진 단어 하나하나의 울림이 절실한 시대이다. 풍요 속에 느끼는 빈곤처럼 너무도 많은 말들 속에서 살지만, 우리의 정서와 마음은 늘 비어 있는 이 시대에, 시의 향기가 퍼져나갈 수만 있다면 그래서 맑고 깨끗한 마음들을 회복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_ ‘들어가는 말’ 중에서

“아직도 글썽이는 시의 마음으로 사람과 삶의 안쪽을 응시하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축복!
순수하고 맑은 영혼과 문학적 감수성에 젖어서 나도 그 교실의 학생으로 한 생애 지나가고 싶다.”
- 류근 시인 -

현직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뽑은 우리나라 대표 시인들의 명시(名詩) 50여 편을 다시 만나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시집과 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윤동주 시집의 초판본이 서점에 진열되고, 시 모음집이 드라마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에 대한 감성을 찾기 시작했다.
이 책 《인생詩선》에는 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 시험을 위해 외우고, 쪼개고, 줄치고, 분석하던, 우리나라 대표 시인들의 명시 50여 편이 담겨 있다. 서정주 시인의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부터,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하종오 시인의 ‘동승’, 김종삼 시인의 ‘묵화’, 신동엽 시인의 ‘산에 언덕에’, 그리고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까지, 우리에게 낯익은 명시 50여 편을 저자는 새롭게 조명한다.
국어교과서에 단골로 실려 누구나 한번쯤 읽어봄직한 아름다운 시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입시와 시험이라는 틀 밖에서 시의 진짜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시인들의 순수한 감성, 아름다운 글, 깊은 울림을 누구나 느끼고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도배된 거칠고 어그러진 말의 잔치 속에서 깊은 산골에서 솟아오르는 영롱한 시인의 목소리가 늘 그리웠다. 정제되고 순화된 고운 속살 같은 말들을 만나고 싶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시를 잃어버린 우리의 미래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을 것이라고 염려한다.

평범하고 소박한 이웃들의 웃고, 울고, 아프고,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를 만나다

《인생詩선》의 저자는 고등학교에서 국어선생님으로 20여 년간 재직 중이다. 대학 입시를 담당해야 하는 교사이자 학교라는 조직의 직장인으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 가슴 아픈 가족사를 겪어낸 가족의 일원으로, 문학을 담당하는 문학인으로 다양한 역할과 책임을 짊어지면서 겪게 되는 평범한 이야기를 책에서 들려주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한 편의 시이다. 한 편의 시를 읊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시인의 이야기이자 저자 자신의 이야기이며, 또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누군가는 이미 겪었고, 누군가는 현재 겪고 있고, 누군가는 앞으로 겪게 될 것임을 저자는 진솔하고 담담하게 얘기한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후략) (※시 전문은 책에 실려 있습니다.)

“경준이 아버지, 자살한 아이의 아버지, 내 아버지 그리고 아들과 학생들이 버거운 나. 모두들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사랑이 힘겹고 고통스럽다. 어쩌면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하려는 행위를 사랑이라 착각하면서 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사랑의 출발은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나는 상대를 조정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다. 상대는 나와 다르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 자체의 색깔과 냄새를 가진 존재이다.
사랑은 기다림이다. 상대가 오기로 한 자리에 먼저 가서 빈자리를 남겨두고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다. 왜냐하면 상대는 내 마음대로 끌어당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오고 싶을 때, 아니면 올 형편이 될 때 상대는 비로소 본인의 의지대로 나에게 온다. 안 온다고 섣불리 일어서서 기다림을 포기하고 나가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먼 데서 오래오래 걸려서 천천히 오고 있는 상대를, 아니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상대를 무작정 애타며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다.
‘세상에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이 있을까’ 시인이 말했듯이 기다림은 고통이며 슬픔이다.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면서 기다리다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 더 이상 기다림이 무의미한 순간에 나는 너에게 간다. 기다림을 포기하는 대신 내가 일어서 너에게 간다. 이 말은 아무리 아프더라도 기다림을 멈추지 않겠다는 고백이리라.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리라.” - 본문 중에서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읽으며, 저자는 시인의 감성을 자신의 인생에 겹치며 스스로 시인의 마음이 된다. 이처럼 자신이 겪은 많은 인생 속에 ‘기다림’과 ‘사랑하는 법’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했음을 알았듯, 독자들 또한 시를 읽음으로써 순수한 시인의 마음을 빌리고 동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책 속으로 추가]
그 후 3학년에 올라가서도 현민이는 늘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이었다. 수능을 치른 뒤에 한번 찾아왔는데 재수할 거라는 말을 했다. 머리가 좋지 않은 것 같고, 집안 형편도 아는 터라 재수하지 말라고 만류하고 싶었지만 “너는 언제나 열심히 하기 때문에 재수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다.”고 격려를 하였다.
일 년 후 현민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지방 국립대 일어교육과에 합격을 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시간 내기가 힘들어 찾아 가질 못하나 조만간 찾아뵙겠노라 했다. 현민이의 성적을 알고 있었던 나는 국립대 일어교육과에 갔다는 말을 듣고는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믿기지 않았다.
해마다 정초에 안부 문자를 잊지 않고 보내던 현민이는 군에 가기 전에 인사한다며 찾아왔다. 많이 의젓해졌고, 여자친구도 있다 했다. 제대 후 대학교에서 주는 학비로 일본에 유학도 갈 거라고 했다. 현민이가 가기 전에 한 말.
“선생님 그때 선생님이 저한테 한 말 기억나세요? 저더러 부반장 중 최고라 했잖아요? 그 말 때문에 저는 포기하지 않게 됐어요.” - p.91 제2장 커피 향 가득한 날

땅끝은 누구에게나 아픔임에 틀림없다. 찾아 나선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수시로 파도가 달려드는 땅끝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그 위태로움에 홀로 서 있다 보면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내 삶의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숨 쉬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신의 축복이며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온 뒤 파랗게 갠 하늘,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해,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 신이 내게 허락한 선물들이다.
땅끝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땅끝이 지나가고 난 뒤 내게 남게 될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자.
그곳에서 발견한 조약돌 하나가 두고두고 살아갈 힘이 될 터이니까 말이다. - pp.112~113 제2장 커피 향 가득한 날

사람에 따라서는 ‘상처적 체질’이 아니어서 훌훌 잘도 털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더라도 아니면 자신이 털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알게 모르게 타인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마음 속 깊이 딱지처럼 앉고, 또 그 위에 앉고 하는 것이 아닐까. 더더군다나 ‘상처적 체질’인 나로서는 교사로서, 부모로서, 아니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헤어날 수 없는 상처를 매일 받으며 살아가는 쪽이다. 이름을 부를 수도 없는 상처들로 인해서 매일 다치면서 상처의 거듭된 폐허를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소소한 일상에서의 상처들이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고, 그 상처들이 나를 아프게 하였지만 또한 나를 깊게 하고 넓게 하였음을 인정한다. 마치 찬란한 채찍처럼 말이다. - pp.129~130 제2장 커피 향 가득한 날

잘 하는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아들이지만 음악이 주는 감동을 알아간다면, 상쾌한 아침의 나뭇잎 새로 비치는 햇빛의 부드러움, 비가 그친 뒤의 뜨락에서 풍겨나는 치자나무 향기의 부드러움을 음악 속에서 만난다면, 노력과 땀으로 이룬 화음의 성취감 속에서 꿈을 꿀 수가 있다면…….
북한 김정은도 겁나서 못 쳐들어온다는 대한민국의 무서운 중2지만, 지금 이 모습 이대로의 아들이,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좋다!’ - p.148 제3장 가슴 뛰는 날

나는 시인이 ‘참 좋은 말’에 대한 시를 쓴 것에 감사를 한다. 독이 될 수 있는 말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보니 의식적으로라도 좋은 말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써야 할 것 같다. 매일 좋은 말을 구호처럼 외쳐야 할 일이다. 온갖 독설과 거친 말에 익숙해 있는 혀에 재갈을 물려야 할 것이다.행복과 위로를 주는 말, 용기를 주고 격려하는 말, 칭찬하는 말, 이 세상에는 독설과 저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참 좋은 말’이 훨씬 더 많다. - pp.163~164 제3장 가슴 뛰는 날

‘지금, 나는 당신이 너무 그립습니다. 나는 당신이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오늘도 그러하고, 어제도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먼 후일 당신을 잊을 날이 오겠지요?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먼먼 후일입니다. 지금은 못 잊어서 너무 아프답니다.’
이렇게 설명을 해도 이 시가 왜 슬픈지 잘 모르겠다는 아이들과 시 패러디 쓰기를 해 보았다.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 그때에 내 말이 대학 갔습니다.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 실컷 자다가 대학 갔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 게임하다 지쳐 대학 갔습니다.
올해도 작년에도 아니 가고 / 먼 후일 삼수해서 대학 갔습니다.

말이 안 되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의 시가 나름 진솔하지 않은가. 지금 못 하지만 언젠가는 해야 하는, 또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써 보자고 하니 이런 반응들이 나온다. 지금 고등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이 잘 나타난다.
- pp.191~192 제3장 가슴 뛰는 날

아이는 계속 떠나가고 부모는 기다리고 맞이하고 또 떠나보내는 일을 반복한다. 떠나가고 찾아오는 길 위에서 흘러가는 게 삶인 것 같다. 열정적으로 떠나가는 순간이 있다면 언젠가는 힘들고 지쳐서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날도 있을 것이다. 비록 며칠 못 머물고 또다시 떠나가야 하지만, 한 번씩 고향으로 찾아가 고향의 힘을 공급 받아야 다시 타향에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법이다. 돌아오는 길과 떠나는 길을 누구나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우리는 살고 있다.
떠나는 길 위에 선 내 제자들의 모습, 한편으로 섣달 그믐날 눈 내리는 밤에 막차를 기다리는 시 속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힘차게 떠나갔지만 언젠가는 지친 몸을 안고 돌아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인생은 길 위에 있고, 그 길 위에서 때로는 쓸쓸함과 낯섦, 말 못 할 침묵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
막차를 기다리는 심정을 아이들은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떠나가는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뒷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 p.203 제4장 눈물 흐르는 날

존재의 이유. 이 세상에서 저들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천에서피고 흔들리는 풀무더기 속에 핀 꽃들은 여리고 아름답고 안타깝다. 꽃들이 남긴 여운은 질기게 가지를 뻗어 살아있는 자들을 휘감는다. 내 나이가 먹을수록 기억 속의 그들은 현재의 나에 비해서 너무 어린 존재들이 돼 간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직업이 선생이라서 나는 오늘도 수많은 오빠와 세월호의 아이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 속에 내 오빠가 있고, 세월호의 아이들이 있다. 선생으로 살아가기가 버거운 까닭이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pp.233~234 제4장 눈물 흐르는 날

사설시조는 조선 후기 서민들이 향유했던 문학이다. 예나 지금이나 민초들의 삶은 한숨과 시름이 가실 날이 없다. 오죽 답답하면 가슴에 창을 내고 싶다고 할까. 임이 보고 싶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날에 마음의 창문을 열어젖히고 싶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한숨, 어떻게 해서라도 한숨이 못 오게 막고 싶다. 문이란 문은 쇠 자물쇠로 꼭꼭 채워 걸어 잠그고, 병풍, 족자까지 다 동원해서 방어막을 친다. 한숨이라는 놈은 나의 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한 듯이 어느 틈에선가 스며든다. 잠 못 드는 번뇌의 밤이 길기만 하다.
두 편의 시조 모두 마음이 답답한 사람들의 노래이다. 하지만 여유가 있다. 시를 읽고 있으면 빙그레 웃음이 난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관조적 자세에서 지혜가 묻어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설정한 발상이 기발하다. 고통스러운 가슴에 구멍을 뚫었으면 하는 생각, 한숨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최선의 방어막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기발함과 가상함 속에 여유가 있다. - pp.245~246 제5장 문득 달리고 싶은 날

1학년 때 눈 똥그랗게 뜨고 선생님 시선을 피해서 재잘대던 아이들이 이제 어느덧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음지에서 피어오른 꽃들처럼 지친 표정들이다.
힘들 때 내밀던 누군가의 손수건 한 장, 그 온기와 사랑 속에서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도 그 외로움에서 비켜서지 않는 법을 배운 대견한 아이들이다. 그들이 서로에게 받은 위로와 사랑이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기를 바란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이들. 무수한 가락을 흐르며 만든 아이들의 노래가 다순 화음으로 어울려서 그들이 가는 길에 등불이 되기를 기도한다. - p.192 제5장 문득 달리고 싶은 날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교사로 살아가는 나의 평범한 일상이 한 순간에 엄청난 비극의 현장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았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선생으로서 나의 역할에 대해 수없이 자문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더없이 귀한 존재로 다가왔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마지막까지 내가 보듬어야 할 귀중한 존재였다. 모두가 귀중한 생명이고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이었다.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나의 가족, 동료, 이웃들 모두 나와 함께 가는 소중한 이들이었다. 크고 화려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존재들이지만 그들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에는 의미 없이 지나칠 사연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한 상념들이 글을 쓰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 - p.301 마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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